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어라, 서태지가 아니라 ‘크라잉넛’이었네.

by 행복한 그림작가 왕썽 2023. 5. 8.
반응형

나는 서태지의 열광적 팬이었다. (인줄 알았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처음 들었던 날부터 1996년 11월 돌연 은퇴를 선언했을 때까지.

그리고 1998년 갑작스럽게 돌아왔을 때도, 나는 여전히 서태지의 노래를 들었고, 콘서트장을 쫓아다녔다.

대한민국의 가수.

199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콘. 

중음악 가요의 판도를 바꾼 가수.

오늘날 K팝의 시초.

문화 대통령.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

나는 서태지의 열광적 팬이었다(이었다고 생각했다.).

내 삶의 배경음악은 서태지의 노래였다(였다고 생각했다).

나의 10대와 20대는 늘 서태지로 가득 차 있었다(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야 알게 됐다.

나의 청춘을 함께 했었던 음악은,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곁에서 나를 위로해 주는 노래는 바로 ‘크라잉넛’의 그것이었음을.

 

나는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살았던 나는, 사람에 대해서도 늘 엉망으로 판단하고 선택해왔었나 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니, 그렇게 사람 볼 줄 모르는 눈으로 잘못된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서태지의 애마 '람보르기니 디아블로'가 중고차 매물로 등장했다는 뉴스가 떴다.

그가 떠오른 참에 새삼 생각해본다.

창백할 정도로 뽀얗고 예쁘장한 얼굴, 바짝 마른 몸매와 가느다란 손가락, 비밀결혼, 뒤늦게 밝혀진 이혼, 람보르기니, 평창동 300평 집, 서울북공업고등학교 중퇴, 음악밖에 모르는(듯해 보였던) 방구석 청년, 전방위적으로 깐깐한 완벽주의자, 병적인 외고집 성격….

 

그 무엇하나 내 취향인 것이 하나 없는 그의 자본주의 인생.

 

어라, 그러고 보니 지금도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건, 여전히 아련한 내 청춘의 기억을 설레게 만들어 주는 건, 외롭고 쓸쓸한 어느 날을 함께 위로해 주는 건, 서태지가 아니라 크라잉넛이었네?

 

크라잉넛.

울부짖는 땅콩.

오디션에 떨어진 어느 날, 버스비까지 털어 호두과자로 끼니를 때우며 울면서 터덜터덜 집에 걸어가다가 떠올린 밴드명이 이것이었다는 짠 내 나는 이야기.

나는 밴드명에 얽힌 이 찌질한 사연마저 좋다.

뭔가 짠한 내 청춘의 그것과 닮아있어서.

 

크라잉넛은 1995년 7월 클럽 ‘드럭’의 오디션에 합격하고 난 후 그해 8월부터 박윤식, 이상면, 이상혁, 한경록 4명이 공연 활동을 시작했다.

드럭을 운영했던 이석문 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드럼 하나에 기타만 3명이고 보컬도 없었다. 조금 난감하기도 하고 음악이나 제대로 할까 싶었다.

그래도 얘네가 펑크록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합격시켰다"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나라 인디 밴드계의 전설이 탄생했고, 2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꾸준히 무대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가)

 

1990년대 중후반 서울의 홍대와 신촌을 중심으로 인디라는 이름의 비주류 음악이 잉태되었고, 그 중심에 크라잉넛이 있었다.

새삼 행복하다.

스물한 살, 반짝반짝 빛나던 내 청춘의 배경음악이 ‘말 달리자’여서.

 

이러다가 늙는 거지.

그땔 위해 일해야 해.

모든 것은 막혀있어.

우리에겐 힘이 없지.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우리는 달려야 해. 거짓에 싸워야 해.

말달리자!

 

내 청춘의 또 다른 이름, 크라잉넛.

그들과 함께여서 내 청춘이 조금 더 행복했다.

 


발매 앨범 아워네이션 1집 (1996)

같은 드럭 소속으로 활동하던 앰비언트/포스트 록 계통 밴드인 옐로우키친과 함께 만든 스플릿 형태의 앨범. 당시 카세트 테이프의 경우 A면에는 크라잉넛, B면에는 옐로우키친의 곡이 수록되어 있다.

 

1집 말 달리자 (1998)

1. 묘비명 2. 갈매기 3. 말 달리자 4. 접속 5. 파랑새 6. 검은새 7. 펑크걸 8. 요람을 흔드는 돈 9. 뻔데기 10. 안웃겨 11. 성냥팔이 소녀 12. 허리케인 13. 싸나이 크라잉 넛의 최초 독집 앨범.

2010년 음악웹진 100비트에 의해 선정된 1990년대 100대 명반 중 30위에 랭크.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 (1999)

1. 서커스 매직 유랑단 2. 신기한 노래 3. 강변에 서다 4. 베짱이 5. 다죽자 6. 더러운 도시 7. 군바리 8. 탈출기 (바람의 계곡을 넘어...) 9. 벗어 10. 브로드웨이 AM03:00 11. S.F (Science Fiction) 12. 빨대맨 13. 게릴라성 집중호우

2010년 음악웹진 100비트에 의해 선정된 1990년대 100대 명반 중 84위에 랭크.

 

3집 하수연가 (2001)

1. 이소룡을 찾아랏!! 2. 만성피로 3. 밤이 깊었네 4. 지독한 노래 5. 붉은방 6. 양귀비 7.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 8. 금환식 9. Honey 10. 불놀이 11. 코미디의 왕 12. 하수구 13. 몰랐어

2010년 음악웹진 100비트에 의해 선정된 2000년대 100대 명반 중 54위에 랭크.

 

4집 고물라디오 (2002)

1. 고물라디오 2. 필살 Off side 3. 너구리 4. 퀵서비스맨 5. 소크라테스 클럽 6. 오드리 7. 황금마차 8. 사망가 9. 타이거 당췌! 10. Oh My 007 11. 양치기 소년의 항해일지 12. 개가 말하네 13. 불꽃놀이 14. 빽구두 15. 귀뚜라미 별곡

 

5집 OK목장의 젖소 (2006)

1. OK 목장의 젖소 2. 룩셈부르크 3. 부딪쳐 4. 명동콜링 5. 마시자[25] 6. 유원지의 밤 7. 뜨거운 안녕 8. 물밑의 속삭임 (Feat. 심수봉) 9. 백수일기 (白水日記) 10. 새 11. My World[26] 12. 순이 우주로 13. 오줌싸개 Generation 14. 한낮의 꿈 15.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16. 튼튼이의 모험

 

6집 불편한 파티 (2009)

1. Crying Nut Song 2. 착한 아이 3. 불편한 파티 4. 루나 5. 만취천국 6. 비둘기 7. 귀신은 뭐하나 8. Wake Up 9. 가련다 10. 가배물어(咖啡物語) 11. Rose Bang 12. 빈자리 13. 생일축하 14. Gold Rush

 

7집 FLAMING NUTS (2013)

1. 해적의 항로 2. Give Me The Money 3. 레고 4. 미지의 세계 5. 5분 세탁 6. 땅콩 7. 새신발 8. 취생몽사 9. Self Happy Christmas & New Year 10. 여름

 

8집 리모델링 (REMODELING) (2018)

1. 구닥다리 멜로디 2. 리모델링 3. 내 인생 마지막 토요일 4. 길고양이 5. 잘생겨서 죄송합니다 6. 심장의 노래 7. 이방인 8. 토요일 밤 9. 똥이 밀려와 10. 망상 11. 우리들은 걷는다 12. 운 좋게도 (2018 Mix)

반응형

댓글